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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수양회기행문, "killing field"에서 "hoping field"로
광주왕성교회 노경수목사 정수행 사모
1주일 전, 노회 교역자 수양회로 캄보디아를 갔는데, 캄보디아에 대한 사전지식은 고작 ‘킬링필드’의 땅인 후진국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는 것조차 주저하다가 분명히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씨엠립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 우리나라의 한 60년대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물론 수도 프놈펜이 아니고 지방의 작은 유적지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초라하고 어설픈 모습이 내 예상과 별로 틀리지 않다. 동남아시아인이면서도 유독이 검은 피부와 왜소한 체구가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여 나이를 가늠하기기 쉽지 않다.
유적지 어디를 가든 외국인들(특히 한국관광객)에게 달려와 구걸하는 아이들, 구걸이 지나쳐 스토커처럼 따라 붙는 아이들과 어른들, 유치원생보다 더 어려보이는 아이,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않아 문맹률이 50%가 넘는다는 가이드의 말이 이해가 된다. 교육을 받을 나이의 아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1000원만 주세요. 1달러만 주세요.” 아니면 수공예품을 강매할 정도로 생활전선에 온 가족이 총출동 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왜 이 민족이 이렇게 못살까?”를 생각하다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나라의 1950-60년대를 생각해보니 미군들을 향해 “Give me a chocolate!"을 외쳤던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50여년을 뛰어넘어 두 민족의 어린이가 오버랩이 되어 슬픈 두 민족의 자화상을 동시에 보게된다.
캄보디아는 한반도의 4/5에 해당하는 18만Km²이며 이중 30%는 산악지대로 주로 북부와 서부 국경지대에 걸쳐있고, 60%는 평야로 거의 벼농사가 대부분이다. 나머지 10%는 ‘톤레삽’이라는 거대한 담수호가 차지하고 있다. 국경지대에 해당되는 산악지대는 서쪽으로는 태국과 북으로는 미얀마와 라오스, 동으로는 베트남과 접하고 있어 잦은 전쟁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캄보디아 내전 당시 라오스 접경지대에 지뢰를 매설해 지금까지 제대로 제거가 되지 않아 해마다 지뢰폭발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있단다.
먼저 씨엠립주변의 사원(유적지)을 돌아본다.
크메르 왕조의 화려한 영화를 뒤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그 문명이 150여 년 전 프랑스 식물학자에 의해 우연히 밀림 속에서 발견되어 지금까지 발굴 작업 중이란다. 12 세기 경의 화려하게 꽃 피웠던 그 문명이 왜 이처럼 철저히 기억 속에 사라진 문명이 되었을까? 이제 겨우 중국 문헌을 참고해서 짜맞추기식으로 그 문명을 연구해가고 있다고 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앙크로 왓’ 사원의 정교함과 그 건축물은 감탄을 자나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다신론적인 힌두교의 사상을 그대로 사원의 건축기술에 반영해 많은 신들의 형상을 한 건축물이기에 아무리 인간의 건축술이 위대하다 할지라도 한낱 우상에 불과한 것을........ 여기서 바벨탑을 생각했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인간의 건축술과 천문학이 아무리 발달한들 인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그 건축물은 하나님이 흩어버리시면 한낱 사상누각(砂上樓閣)인 것을.....
‘따 프롬’ 사원에서는 하나님의 손길이 더 명확하게 보인다. 사원의 거의 대부분이 복원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이유가 바로 스펑나무들 때문이란다. 나무의 씨가 사원의 지붕에 떨어져 거기에서 발아해 싹을 틔워 자라면서 뿌리를 땅으로 뻗어가며 수 백 년이 지나면서 사찰을 휘감아 버려 무너지게 한 것이다. 이것을 어찌 우연이라고 이야기 하겠는가? 이 스펑나무들이 거대하고 기묘하게 자라서 세계적인 잡지인 'National Geographic'의 표지 사진으로 자주 오른단다,
그 당시에 100만 명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화려한 이 도성이 역사 속에 잊혀져 700년 동안 밀립 속에 잠을 자다가 폐허가 된 모습으로 발견된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캄보디아 땅은 지진도 없고 씨엠립 이곳은 분지라 바람도 없다. 더군다나 유적지는 전쟁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폐허가 되었다고 생각하느냐?”고 가이드에게 질문했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작용에 의해 그런 것 아니겠냐”는 궁색한 대답이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를 알기에...... 스펑나무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 인간의 문명까지 잡고 계신 하나님! 바로 하나님이 하신 것이기에......
이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톤레삽호수로 간다. 톤레삽호수는 캄보디아 중서부에 위치해 동남부쪽으로는 메콩강으로 어어지고 수도 프놈펜까지 수로로 연결이 되어있다.
우기 때(5-10월)는 메콩강의 범람으로 인해 황톳물이 유입되어 흙탕물이 되고 건기(11-4월)에 비해 호수의 수량이 3배가 많아져 국토 면적의 10%에 해당된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가 짐작이 된다.
호수에서 배를 타고 가다보니 수상가옥들이 즐비하게 눈에 들어온다. 수상가옥들은 비교적 수위가 낮은 곳에 위치하지만 건기 때에는 호수 중심부까지 가옥들을 이동시킨다고 한다. 거기에서 나서 자라고 죽고 일생을 물 위에서 사는 사람들...... 모든 생활이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호숫물이 식수요, 생활용수요, 짐승을 키우는 용으로도 사용된다. 또한 생활용수가 그대로 하수가 되어 톤레삽호수로 방류되는 너무도 열악한 상황에 놀라 가이드에게 묻자 흔연스럽게 이야기한다.
호수에 널려있는 맹그로브나무와 부레옥잠이 자정작용을 하기 때문에 질병에 걸리지 않는단다.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깨달으며 감탄을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호사를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좀 더 가진 자로서, 누리고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했던 모습이 하나님 앞에 교만이었음을 회개한다.
수상촌은 캄보디아 원주민과 베트남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베트남인들은 베트남 내전을 피해 메콩강을 통해 유입된 "boat people"이 정착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단다. 각 가정마다 작은 배를 가지고 있어 수상교통으로 사용하고, 내륙에 있는 부족도 이곳으로 물건을 가지고와 여러 집단이 서로 물물교환을 하며 나름대로의 상권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장소를 옮겨 씨엠립에 있는 ‘작은 킬링필드’의 현장으로 갔다. 30여 년 전 폴포트 정권하에서 이념의 대립으로 무려 캄보디아 인구의 l/3인 200만 명이 학살되었는데 주로 지식인, 친미파, 노동자, 농민 등이 희생되었고 그들의 사진과 유골이 그대로 유리보관함에 전시되어 그 날을 교훈하고 있다. “죄는 용서하되 그 일은 잊지 말자”는 말이 여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가끔씩 열대성 폭우(스콜, squall)로 인해 흠뻑 비를 맞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그 나라의 기후와 풍습도 알게 되었으니 큰 수확이다. 이 스콜로 인한 침수와 지열(地熱)에 대비해 주택을 높게 짓고 뱀의 침입을 막기 위해 기둥은 모두 사각으로 건축한단다.
그리고 농촌에서는 주택과 주택 사이에 나무를 심어 울타리로 대신한다. 주로 바나나, 야자, 망고, 고무나무 등 4종류의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망고와 야자는 과일과 음료대용으로 그리고 바나나는 과일을 그대로 나무에 둔 채 숙성되면 자동적으로 밑으로 떨어져서 냄새를 풍겨 그것으로 뱀의 접근을 막고, 고무나무의 수액인 라텍스로는 방습제로 유용하게 쓴다고 하니 생활 속에서 온 경험이 저들에게 참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들른 유원지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수공예품을 들고 와서 ‘1달러’라고 하며 '사주라'고 애원을 한다. 필요하지 않아 사양하고 그냥 천원을 주었는데 그 때 갑자기 스콜이 몰려와 소녀를 부둥켜안고 쓰고있던 챙이 큰 모자를 벗어 몸을 감싸주었더니 그 마음을 안 모양이다. 떠나는 차의 차창 밖에서 연신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즐비하게 늘어선 많은 아이들이, 쉬고 있는 우리일행에게 와서 한국말로 인사하고 한국동요와 가요까지 선물한다. 바로 선교사님들이 전도하여 한국말과 노래를 가르쳤다고 한다.
교회는 매 주일마다 아이들로 넘쳐난단다. 어린아이의 출산율이 높아 황금어장과 같다는 이 말이 얼마나 고무적이고 기뻤는지 모른다. 어린 아이들이 넘쳐나는 곳, 게다가 한류열풍에 한국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이곳이 분명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보게 되었다.
동남아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이곳이지만, 하나님께서 분명 21C에 우리민족을 통해 이곳에 일하실 것으로 확신한다. 비록 아픔과 죽음의 땅 ‘killing field’ 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 땅을 치유하실, 소망이 있는 땅 ‘hoping field’임을 분명히 보았다.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고 거리의 아이들로 전락한 저들에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선교비를 보내고, 학교를 세우며 학용품을 보내고, 우물도 파주는 선한 사업이 이미 한국교회와 선교사님들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다. 가슴 뭉클한 마음과 함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지금은 후발주자지만 이 민족을 위한 선교에 강한 책임감과 사명을 동시에 느낀다.
귀국해서도 며칠 동안 그 소녀의 새까만 눈동자와 환한 얼굴이 계속 아른거린다. 결국 주님 앞에 그 소녀와 캄보디아를 위해 기도하던 중 주님의 말씀이 너무도 강하게 심령에 꽂힌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까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나 4:11) 아멘. 주님이 그 땅을 소망의 땅으로 축복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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