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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으로서의 삶

커뮤니티박형동2011.04.02조회 2597

 

명품으로서의 삶


  삶에 있어서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옛부터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다. 같은 사람인데 항우는 한신을 버렸고 유방은 그를 데려다 썼다. 천하통일의 성패는 거기서 갈렸다. 또, 유비는 제갈량을 만남으로써 천하를 얻을 수 있었고, 제갈량 역시 유비를 만남으로 그 뜻을 천하에 펼 수 있었다.

  물과 물고기의 만남(수어지교 水魚之交)이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영국의 한 귀족은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최고의 명품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었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프릿츠 클라이슬러는 천하에 둘도 없는 그 바이올린이 몹시도 보고 싶어 그 귀족을 찾아가 졸랐다. 정중하게 거절하던 귀족은 클라이슬러의 간청에 못 이겨 잠깐만 보여주기로 했다. 바이올린을 받아든 클라이슬러는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더니 자기의 왼쪽 뺨에 갖다 댔다. 그리고 활을 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귀족은 황급히 말리려 했으나 그 순간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바이올린에서는 맑고 밝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쏟아져 나오더니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소리와 새들의 노래 소리, 그리고 천사들의 찬송 소리가 울려나왔다. 귀족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이제껏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신비한 선율에 감동한 귀족은 그때서야 통절하게 깨달았다.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다는 것을....

  클라이슬러는 그 바이올린에 크게 만족하여 이 바이올린을 팔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귀족은 말했다. “이 바이올린은 어떤 값으로도 팔 수 없는 명품입니다. 결코 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바이올린은 오늘에야 진정한 주인을 만났습니다. 이제 이 바이올린은 당신의 것입니다.”

  그렇다. 명품은 그 명품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사람이 있다. 명품은 결코 장농 속에 숨겨두거나 자랑거리로 벽에 건사하게 걸어놓는 것이 아니다. 제 기능에 따라 쓰일 때 비로소 명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남처럼 다 잘하려고 한다. 공부도 남처럼 잘하고 운동도 잘하려고 한다. 그래서 과외를 위해 엄청난 사교육비를 부담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의 권위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남처럼 잘 하려는 것이다. 즉 명품이 아니라 짝퉁인생이 되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짝퉁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천하보다 귀한 유일한 존재다. 나와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남들보다 못한 것은 많지만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것, 나만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의 인간승리는 귀먹고 말 못하고 앞을 못 보는 헬렌켈러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으며, 우리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찬송은 지체장애인 송명희만이 빚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실은 바늘처럼 강하지도 뾰쪽하지도 않다. 옷감을 뚫고 들어갈 능력도 없다. 그러나 떨어진 옷을 깁기 위해서 실이 바늘이 될 필요는 없다. 물론 바늘도 실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바늘귀에 뀌어 있기만 하면 된다. 바늘과 실 같은 만남, 그런 만남이 있을 때, 나의 삶은 가치롭고 행복해지며 두고두고 아름다운 이름과 감동을 남길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참된 주인을 만나야 한다. 나의 죄악을 씻어주신 주시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주님, 그분을 만나야 한다. 그분의 뜻과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내 생각과 내 욕심이 앞서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을 온전히 그분에게 맡겨야 한다. 그분의 손으로 연주될 때 나의 삶에서는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시원한 바람소리, 그리고 새들의 노래 소리, 하늘 천사의 노래 소리를 낼 것이다. 명품으로서의 삶, 그것은 나의 진정한 주인이신 그 분의 손에 맡겨지는 것이다.

(전남도민일보 2008년 4월 2일)